무키아누스에 의해 로마가 정복되는 동안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는 유대 문제를, 무키아누스는 로마 탈환 후 갈리아 문제를 해결한다.

로마인 이야기 8편 - 남아있는 문제들

비텔리우스가 황제에 등극하기 위해 ‘라인 군단’을 대부분 로마로 이끌고 간 동안 율리우스 키빌리스라는 인물은 그 근처 갈리아 부족들과 연락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군은 급하게 근처에 남아있는 병력을 모았지만 갈리아 부족들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남아있는 로마군은 갈리아에 충성하게 된다. 이 때가 로마 역사상 최초의 치욕이었다.

율리우스 키비우스는 초반에는 베스파시아누스를 옹립한다는 명목하에 로마군을 공격했지만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에 등극한 후에는 본색을 들어내어 로마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키아누스는 이 사태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로마를 정복한 후 그는 병력을 다시 모은 후 실전 경험이 풍부한 켈리아리스와 갈루스를 지휘관으로 뽑았다. 반격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반격을 시작한 로마군에게 더 이상 갈리아 군대는 로마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패한 갈리아 군대에게 무키아누스는 관용을 베풀었다. 갈리아에 굴복한 로마인들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했지만 무키아누스의 관용으로 다행히 본래의 로마인으로 융화될 수 있었다.

무키아누스의 행동은 이전의 카이사르가 했던 행동가 똑같았다.
과연 이런 행동을 쉽게할 수 있을까? 아니 이렇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할 수 있을까?
사실 책을 보다 보면 당연하다고 느낀다.
군대라는 특성, 조직, 집단이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같이 계속 나아가려면 당연히 여기서는 관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과연 내가 여기까지 생각이 닿을 수 있을까?

이와 함께 처리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유대 문제였다. 유대인들은 1년에 지정된 액수만큼 예루살렘에 돈을 냈다. 하지만 당시 플로루스라는 장관이 유대의 속주세 대신 예루살렘에 모아진 돈을 마음대로 몰수했다. 이게 유대 문제의 발단이었다. 유대인은 요세푸스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무키아누스와의 전쟁에서 패한 요세푸스는 무키아누스에게 항복하고 베스파시아누스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이후 요세푸스는 티투스와 함께 예루살렘 탈환을 함께했다. 최대한 유대인들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끝까지 거부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이렇게 갈리아 문제와 유대 문제는 해결되었다.

어느 정도의 신앙심이면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것일까?
단순히 집단이라는 곳에 갇혀있는 것일까? 아니면 혼자 다른 말하는게 두려워서?
세뇌교육의 힘인 것일까? 이런 유대교의 특성때문일까?
아직도 이 근처는 시끄러운 걸로 안다. 사람들 모두 안정되지 않은 삶을 계속 살고있다.
뭔가 그 분쟁의 속에는 유대교도 연관되어있을 것 같다.
모두가 잘 안정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이제 변방의 큰 위기는 모두 극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로마와 다른 속주들의 관리이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어떻게 해나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