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가 된 후 무키아누스는 점점 자신의 활동을 줄여나갔다고 한다. 그럼 이 베스피시아누스 황제와 그의 아들 티투스. 이 두사람의 치세는 어땠을까?

로마인 이야기 8편 -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다른 황제들과 다르게 출신 신분이 낮았다. 하지만 그는 이를 잘 이용했다. 자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누구나 만나주었고 딱 자신의 출신 신분다운 정치를 했다. 어감이 좋지는 않지만 그는 신분의 권위를 잘 내세우지 않았고 그저 ‘건전한 상식인’으로 행동하며 로마를 다스렸다. 하지만 자신의 출신이 낮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더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려고 한 부분도 있었다. 원로원에게서 부적격 황제를 탄핵할 권리를 빼앗았다. 하지만 이렇게 빼앗았다고 하더라도 이 당시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자유롭던 시대였다. 법으로 뻇지 못하면 무력으로 충분히 뺏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부분에 있어 성실했다. 원로원 회의, 서민들과 만날 수 있는 각종 대회 등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또한, 그는 콜로세움을 짓고 재정 회복을 위한 노력과 함께 교육, 의료 등에도 다양하게 힘썼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원로원과 시민들 모두와 친해지려고 노력한 인물이었다.

보통 낮은 신분에서 갑자기 높은 신분이 되면 우쭐대기 마련이다.
하지만 베스파시아누스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변화가 없었다.
이 부분이 그가 황제로서 오랜 기간 로마를 다스릴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정말 모든 일을 딱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행동했다. 그래서 모두가 납득할 수 있었다.
이 선을 지키는게 가장 힘들텐데 잘 지킨 베스파시아누스.
그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등의 황제보다는 특색이 없지만 그게 가장 큰 무기였던 것 같다.

베스파시아누스가 죽고 아들 티투스는 자연스럽게 뒤를 이었다. 정말 자연스럽게 세습이 이루어졌다. 티투스는 군사적 경험도 있었고 베스파시아누스를 따라 다양한 관직도 했기 때문에 황제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항상 최선을 다하고 성실했지만 시대는 그런 그에게 큰 시련만을 가져다 주었다.

먼저 폼페이의 베수비오 산이 폭발한 것이다. 이 화산 폭발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티투스는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직접 폼페이로 갔다. 진두지휘하며 재해 대책을 세우던 도중 로마에 큰 화재가 일어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티투스는 바로 로마로 귀환했다.

이 황제는 불타버린 공공 건축물(플라비우스 원형극장, 옥타비아 회랑, 사이프타 율리아 등) 복원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먼저 내놓았다. 그러자 로마의 부유층도 돈을 기부했고 그 결과 복구비는 쉽게 모아졌다. 이 때 ‘티투스 목욕탕’도 함께 만들었다. 이 위치는 바로 네로의 꿈이었던 ‘도무스 아우레아’의 위치였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모습인 것 같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때문에 많이 힘든 시기인데...
유명 연예인들의 기부 소식들이 연달아 들려온다.
이런 모습은 참 보기 좋은 것 같다.
아무리 삶이 팍팍해도 그래도 여전히 따뜻한 정이 남아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다.

이렇게 재해 복구에 모든 시간을 투자했지만 바로 다음해에 전염병이 발생했다. 티투스는 다시 또 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재해로 인해 심신이 지쳤는지 티투스는 2년간의 짧은 치세 후 바로 죽게 된다.

정말 왕다운 왕인 것 같다.
내 일인 것 처럼 행동하는 티투스의 모습을 정말 본받을 만 한 것 같다.
재해 복구가 끝나기 전까지 그 자리를 뜨지 않는 모습... 존경스럽다.
정말 일찍 죽은 것이 운이 없다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치세가 짧으면 누구나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다'라고.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티투스의 죽음으로 갑작스럽게 황제가 된 그의 동생 도미티아누스. 그는 과연 어떤 황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