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쓸 내용은 서기 270년 ~ 284년 사이의 일이다. 갈리에누스 황제가 죽은 후 재위를 물려받은 것은 아우렐리아누스이다. 이 황제 때 삼분된 로마가 하나로 다시 통합되는데 어떤 황제일까?

로마인 이야기 12편 -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아우렐리아누스 황제(270년 ~ 275년)

황제가 되기 전부터 그는 발레리아누스와 갈리에누스 황제에게 큰 신임을 받았다. 황제에 등극한 후에도 그 실력을 보이면서 하나씩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아우렐리아누스는 북쪽 방위에 신경을 썼다. 실제로 야만족을 크게 싸워 이겼고 패퇴한 야만족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패배하진 않았지만 이 때 이탈리아 반도 내까지 야만족이 쳐들어 온 것에 원로원과 시민들은 크게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불안은 결국 로마를 둘러싸는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을 쌓는 계기가 된다. 누구나 쉽게 들락날락하며 교역을 하던 로마는 사라지고 성벽으로 둘러싸인 로마만 남게 되었다.

카이사르 시대에 성벽을 허물었는데... 이젠 다시 성벽을 쌓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만 봐도 로마가 위기라는 것이 느껴진다. 오랜기간 평화롭게 지낸 로마인들이
지불해야 할 대가였을까...? 오래 지속된 평화는 사람을 나태하게 만든다.
야만족의 침입에 허둥대는 로마인들은 이제 더 이상 이전을 돌아갈 능력을 잃어버렸다.
나도 지금 항상 똑같은 패턴으로 생활하고 살고 있다.
이 패턴을 벗어나기에 너무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사는 게 옳은 것일까?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던져본다.

아우렐리아누스느 도나우 강 방위를 위해 다키아를 야만족들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넘겨주자 마자 바로 팔미라로 쳐들어 갔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제노비아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제노비아는 거절했고 결국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 당시 제노비아는 자만심에 가득했고 로마를 깔보고 있었다.

결과는 아우렐리아누스의 압승이었고 시민들은 로마군을 열렬히 환영했다. 일부 사람들은 여자와의 전쟁한다고 비웃기도 했지만 제노비아는 그 당시의 일반 여자와는 다른 군사적인 능력도 가진 여자였다.

어쨌든 이렇게 팔미라를 정복한 아우렐리아누스는 갈리아로 눈을 돌렸다. 갈리아 제국은 로마화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스템을 로마가 가진 그대로 사용했다. 그래서 갈리아 제국 왕조차 존재 이유에 의문을 품었고 로마가 갈리아로 눈을 돌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대로 항복했다.

이로써 로마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고 단지 다키아 지역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잃었을 뿐이었다.

이런 아우렐리아누스도 어이없게 자다가 살해당했다. 이유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이 없다. 그냥 꾸중을 들은 부하가 겁이나서… 죽였다고 한다. 아우렐리아누스가 죽었을 때 동시대 연대기 작가는 그가 있었을 때 행복했고 시민들은 그를 사랑했고 병사들은 그를 존경했고 적은 그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진짜 훌륭한 사람들이 어이없게 죽는 것을 보면 너무 허무하다.
지금은 살해당할 일이 정말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고대 시대에는 너무 심하다.
앞에서 의식 수준이 높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국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그 외 황제들

아루렐리아누스가 죽은 후 타키투스(275년 ~ 276년)가 황제에 등극했지만 너무 나이가 많아서 1년 후 자연사했다. 이 후 그의 동생인 플로리아누스가 황제에 올랐지만 이집트에 주둔하던 군단이 프로부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원로원은 이에 위기감을 느껴 플로리아누스를 죽이고 프로부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프로부스(276년 ~ 282년)는 발레리아누스를 은인으로 생각헀던 인물로 그의 아들 갈레리우스에게도 충성을 다했던 인물이다. 황제에 올랐을 때 나이는 44살이었고 가장 적절한 나이였다.

그 역시 갈리레우스 황제처럼 수도 로마에 있는 것이 아닌 계속 방위선에서 지내면서 야만족의 침입을 막았다. 그는 야만족의 침입도 막았고 방위선 정비도 충실히 했다. 그런 그는 야만족에게 승리했을 때 이전의 로마인들 처럼 관용을 베풀었다.

이렇게 지속된 전쟁로 농경지 파괴되었고 그 당시 기반 산업이 농업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큰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아직 끝내지 못한 페르시아 전쟁을 하기 전에 시르미움 일대의 농경지 복구 작업을 수행했다.

이 때 동원된 군단병들의 불만이 커졌고 그들 중 한 명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렇게 로마는 그래도 제대로 된 황제 두명을 연속적으로 잃었다.

이후 카루스(282년 ~ 283년)가 황제에 올랐다. 그는 그의 둘째 아들과 함께 페르시아로 진격했고 전쟁을 치뤘다. 페르시아는 당시 약해져 있었고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벼락에 카루스는 죽었고 그의 둘째 아들 역시 살해당했다. 이후 둘째 아들의 경호를 맡았던 디오클레스가 황제에 추대되었다. 하지만 아직 카루스의 첫째 아들 카리누스가 있었기에 그와 내전을 치뤄야 하는 상황이었다. 카리누스는 당시 서방에 있었고 1년 간 부하들의 신망을 얻지 못했다. 그 결과 카리누스는 살해당했고 디오클레스는 내전없이 황제가 되었다.

유구무언.
이젠 이렇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다.
너무 안타깝고 그냥 망해가는 나라의 말로를 보는 느낌이다.
망해갈 땐 이렇게 무너질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도 로마가 지금까지 다져온 것이 있기에 이정도라도 버티면서 무너지는 구나... 하는 느낌?
적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닌 내부에도 있다.
위기일 수록 내실을 잘 다져야 할 것 같다. 외부의 적도 막으면서 내실을 다질 여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