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읽은 책은 에이트(Eight)라는 책에서 자주 소개하던 칼비테 교육법이라는 책이다. 사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아니라서 꼭 읽어야하나? 라는 생각을 했지만 교육에도 일부 관심이 있기에 읽어 보았다.

사실 이 책은 선행학습을 권고하는 책이다. 교육에 있어 항상 끊이지 않는 이슈라면 바로 사교육과 선행학습일 것이다.

선행학습. 과연 필요한 것일까?

실제 주인공의 아이는 정말 어릴 때부터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 이런 교육이 아이의 지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자극시키게 만들었고 결국 최연소 박사학위를 시작으로 정말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

책에서의 선행학습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생각하고 있는 선행학습과 많이 다르다. 우리는 지식적인 부분의 공부만을 선행한다. 하지만 칼비테가 말하는 선행은 다르다.

칼비테는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아이에게 장난감으로 인식시키려고 했다. 즉, 순수한 아이에게 처음부터 고자극을 주는 것이 아닌 서서히 자극을 높이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물을 차별하지 않고 보는 시각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시각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정말 매일 아이와 붙어있어야 하고 어떻게 교육시킬지 항상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끈질기게 아이를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아이를 진짜로 사랑하고 한 인격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칼비테 목사는 부인과 함께 한시라도 아이에게서 떨어져 있지 않았고 최대한 직접적 간섭보다는 관찰 후 피드백 형식으로 아이에게 다가갔다.

우리의 어릴 적 교육은 어떤가? 맞벌이 부모님에 의해 학원다니는 것에 익숙하고 외부의 다양한 자극에 쉽게 유혹당하고 있다. 단순히 점수만을 위한 학습. 이게 현실이다.

칼비테는 아이가 한가지를 습득하기까지 오래 걸리더라도 기다렸다. 묵묵히 기다렸다. 친구같은 아버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빨리 못풀고 해결 못하면 부모님에게 혼나거나 큰일 날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칼비테는 자신의 아이가 어느정도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친구 사귀는 것을 컨트롤 했다. 친구와 노는 것을 간섭하진 않았지만 꾸준히 관찰했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바로 떼어 놓고 다음부터 만나지 못하게 했다.

인간은 참 신기한게 자극적인 것에 쉽게 물든다. 그것은 사실인 것 같다. 더 재미있으니까. 이런 자극을 너무 어린 나이에 느끼게 되면 좋지 않다고 한다. 아직 완전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했으니까…

나도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정말 친구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부모님께 너 이런 것 어디서 배웠어?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혼나면서… 사실 좋고, 나쁘다라는 기준이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것인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회나 남에 피해만 주지 않는 선이면 뭐 좋고 나쁨을 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어쨌든… 칼비테라는 사람은 자신의 아이를 사랑으로 키웠다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즉, 다그치지 않고, 항상 정확한 이유를 가지고 혼을 내고, 아이와 끊임없이 이야기했던 사람이다.

우리도 이와 같은 흉내라도 내보려면 일단 지적 수준이 높아야 한다. 그리고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아이만을 위한 생각을 해야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럴 수 있을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아이와 끊임없는 유대감을 가지고 아이에게 자연이라는 자극을 주어야 한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