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은 카이사르의 유년부터 중년까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앞에서 카이사르에 대한 강조가 있어서 도대체 어떤 인물일지 궁금했기에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로마인 이야기 4편

카이사르는 귀족이지만 그들이 사는 팔라티노 언덕에 살지 않고 시장바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부라지구에서 자랐다. 유년시절에 살기 힘들었지만 귀족으로서의 품격을 낮추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깔끔하고 패션감각도 뛰어났다고 한다.

아버지가 술라파가 아니였고 술라의 살생부에 올랐기 때문에 그 일족인 카이사르도 이름에 올랐다. 술라는 카이사르가 후에 뛰어난 인물이 될 것이며 원로원 체제를 무너뜨릴 사람으로 이미 인식했고 그런 위험 인물은 미리 없애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 많은 반대와 어리다는 이유로 다행히 살았다.

이렇게 유복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카이사르는 신기하게 자존감이 높았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겉모습만 치장한 것이 아닌 내면도 가꾸고 말재주까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정말 다양한 여자를 만났지만 자신의 중심을 지키며 흔들리는 모습은 없었다. 또한 빚을 그렇게 많이 졌다고 한다. 당시 크라수스는 로마 최고의 부자였는데 그에게 빌린 돈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집을 사는데 쓴 것도 아니고… 여자에게 선물하거나 자신을 치장하는데 썼다. 또 공익사업에 자신의 개인 돈을 썼다.

도대체 크라수스는 왜 카이사르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빌려줄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크라수스는 카이사르가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아니면 빌려준 돈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계속 빌려줄 수 밖에 없었을까?…

보통 집안 환경(부모님, 돈 등)이 안 좋으면 피해의식이 많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도 많이 봤고… 카이사르가 그 중심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귀족이라는 지위…? 내 생각에는 많은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생긴 야망과 그 과정에서도 꾸준히 책을 읽고 자기계발에서 얻은 통찰이 카이사르를 만들었을 것 같다.

카이사르는 유년, 소년, 청년기를 모두 조용하게 보냈다. 하지만 야망은 잃지 않았다. 정세가 좋지 않았기에 망명, 유학 등으로 오랜 시간을 낭비했지만 항상 틈을 보며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자신의 야망을 펼칠 준비를 했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원로원에 의해 많은 피해를 봤고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환경이 지속되었기에 원로원을 와해시키려는 생각을 지녔다. 그래서 항상 평민들에게 인기를 얻기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호민관이라는 직책에 지원할 수는 없었지만 최고제사장이라는 위치로 우회하며 호민관에 힘을 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폼페이우스에 의해 저절로 카이사르는 집정관이 될 수 있었다. 폼페이우스는 당시 로마의 최고의 인물이었다. 이 폼페이우스는 야망도 있었지만 허영심도 강했기에 자신의 능력을 뽐내려고 했다. 이러한 결과 원로원은 그를 경계했고 두려워했다. 이러한 추세는 저절로 유능하지 않고 다루기 쉬운 인물을 집정관에 두기로 생각한 원로원들은 그 당시 자신의 능력을 꼭꼭 숨겨둔 카이사르를 집정관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원로원은 법과 규율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집단이다. 그래서 예외 상황을 매우 싫어한다. 하지만 그 당시 인물이 없던 로마는 폼페이우스라는 젊은이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었다. 폼페이우스만큼 전투를 잘하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젊은 폼페이우스가 해달라는 것을 예외로 해줄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원로원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카이사르는 집정관에 선출되고 평민을 위한 법을 제정하고 원로원의 힘을 약화시키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기간은 1년… 그래서 그는 그 이후 갈리아 총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이 때부터 갈리아 정복의 시대이다. 실제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복을 하는 동안 직접 글을 썼고 그 책이 갈리아 전쟁기이다.

갈리아 인들은 일단 단합이 안된다. 부족 공동체의 생활을 오래한 그들은 다른 부족과의 협동에 익숙하지 못했고 결국 끊임없이 뭉치고 분열하고를 반복하며 카이사르에게 대항했다. 즉, 로마군에게 절대 이길 수 없었고 카이사르에게 굴복했다. 약 7~8년간 끊임없이 굴복당하고 다시 반항하지만… 그 때마다 카이사르에 의해 저지되었고 큰 피해를 입은 갈리아는 완전한 항복을 하게 된다.

갈리아는 로마만큼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인재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이 된다. 또한 전쟁은 경험에서 오는 것인데 갈리아 인들은 전쟁의 경험을 축적하기에는 단합된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었다. 각 부족은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갈리아가 마지막으로 항전할 때 베르킨게토릭스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유일하게 카이사르를 힘들게 만든 사람이었다. 단합되지 못한 갈리아를 단합시킨 것 뿐만 아니라 카이사르의 상황을 면밀히 조사하여 대응했다. 하지만 카이사르와 정예군이 있는 로마군에게는 이기지 못했다.

카이사르가 항상 갈리아 군과 전쟁할 때 동원한 군사는 약 5~6만명이다. 갈리아는 몇 부족만 합쳐도 30만명 가까이 되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항상 졌다. 생각해보면 로마군사 한 명이 갈리아 군 4~5명만 상대하면 된다. 즉, 오합지졸은 아무리 많이와도… 이길 수 없다는 느낌이 한번에 들었다.

이러한 전쟁을 통해 로마군은 다리를 놓는 기술, 진지를 구축하는 기술, 성을 함락하기 위한 다양한 무기를 제조하는 기술 등을 익혔다.

이런 갈리아 전쟁기간 중에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 카이사르는 루카회담을 가졌고 삼두정치가 등장했다. 즉, 세명의 우두머리가 로마를 이끄는 것인데 크라수스, 폼페이우스가 집정관을 동시에 하고 집정관 이후에는 자신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집정관으로 선출시켰다. 그 결과 원로원들의 힘은 한없이 약해졌다. 이후 크라수스가 집정관 이후 속주 통치할 때 파르티야를 얕보고 공격하다 죽었고 그 결과 삼두정치가 와해되기 시작했다. 원로원들은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사이를 이간질시키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 들은 이제 무력으로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다.

삼두정치의 폼페이우스, 크라수스는 당시 로마에서는 뛰어난 인물이다. 하지만 일단 폼페이우스는 자만심이 너무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을 한다기 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인정을 받고 그 하나의 능력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압도적인 능력, 그리고 그 당시 없어서는 안될 능력… 전투력, 지휘력. 역시 능력도 중요하지만 정말 그 능력이 필요한 시대에 태어난다면 아마… 크게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도 최고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크라수스는 돈만 많고 운좋은 사람이다. 얼떨결에 전쟁에 몇 번이겨서 명성을 얻고 돈에 눈이 밝은 장점을 활용해 로마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돈이 많으면 가만히만 있어도 잘 살 수 있었지만 한번 정치에 뛰어들어 권력을 알게되었고 그 달콤함을 알게되면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놓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크라수스를 보며 느꼈다.

원래 로마로 돌아올 때는 군단을 해체해야 한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해체하지 않고 루비콘 강(로마의 경계)를 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책을 읽다보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500페이지가 넘기도 했지만… 다음 권을 읽어야 진짜 카이사르가 생각했던 미래, 로마의 모습을 알 수 있겠지만 지금 내 생각에 카이사르는 자신이 겪어야한 했던 상황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직접 나서려고 하는 것 같다. 복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단순한 복수가 아닌 환경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귀족이지만 평민과 같은 생활을 해야했고 수많은 빚더미에 시달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의 연속… 그 사이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잃지않고 버티어 최고까지 오른 카이사르.

지금의 나는 회사 교육 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의견을 상사에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그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 해답에 빠르게 도달하는 길은 무엇일까? 그리고 카이사르의 그 근원은 어디서 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