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은 카이사르의 원숙기부터 살해당하고 옥타비아누스가 정권을 잡기 직전까지의 내용이었다. 4편에서는 카이사르가 차근차근 기반을 다져온 것이 주된 내용이라면 이번에는 그 기반을 토대로 카이사르가 로마를 지배하는 시대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로마인 이야기 5편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군대와 함께 넘었다. 이때 루비콘 강은 로마의 경계였다. 즉, 반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심각한 행위였다. 하지만 폼페이우스와 원로원들은 도망쳤다. 그리스로… 카이사르는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폼페이우스와 협상을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는 거절하고 결국 두 군대는 파르살로스 평원에 집결하게 된다. 이 전투의 결과는 카이사르의 승리였다. 폼페이우스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도망치지만 살해당해 죽었다.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폼페이우스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휘둘리기만 했을까? 수도 로마를 버린 것부터 시작으로 다양한 원로원들의 의견에 휩쓸려 자신의 주관대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들이 너무 답답했다. 그 때의 상황과 폼페이우스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너무 아쉽다. 물론 카이사르가 뛰어난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폼페이우스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집트는 당시 클레오파트라와 남동생 둘이서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역시 두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듯… 둘은 결국 갈라져 클레오파트라가 쫓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가 죽은 시점에 카이사르는 이집트에 있었고 그녀는 그에게 접근하여 보기 좋게 다시 예전의 군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다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말을 기억할 것 같다. 카이사르가 소아시아 분쟁을 진압할 때 한 말이었다. 폰토스 왕 파르나케스는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에 집중하고 있을 때 로마의 동맹국들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타이밍은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소아시아의 거의 절반 이상을 점령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상대는 카이사르였다…

이렇게 갈리아를 평정하고, 그리스를 포함한 아라비아 반도, 이집트, 에스파냐 이렇게 전부 완벽하게 평정하고 로마라는 국가의 경계를 확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이 당시에는 국경선이 없었고 로마의 힘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하는 국가도 많았기 때문에 안정을 위해서 해야할 일은 가장 먼저 로마의 방어선을 확고히 하며 동맹국, 속주국을 확실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내정을 맡았다. 하지만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가 생각한 만큼 뛰어나지 못했고 그 결과 유서에 그는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사실 카이사르만큼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자기가 가져야할 이상을 가지게 되면 항상 끝이 안좋길 마련이다. 이 예를 안토니우스에게서 알 수 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포함하여 로마 평정을 끝내고 내정 개혁을 실시했다. 일단 밀린 달력을 개편하고 국립조폐소를 지어 기축 통화를 만들고 정치, 행정, 금융, 사회 등 전 부분에서 개혁을 실시했다.

교묘하게 독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 후 장기 집권하는 카이사르. 원로원과 일반 시민 모두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기자신은 혜택이 없는 듯한 느낌을 주는 카이사르. 이런 그에게도 항상 적이 있었으니 바로 키케로를 포함한 반 카이사르파였다. 그들의 이유는 겉으로는 독재가 아니지만 곧 독재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카이사르는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적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욕을 먹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재를 하려고 하는 느낌을 준 것도 잘못이지만 애초에 겸손하지 못한 행동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결국 그는 3월 15일에 브루투스에게 살해당한다. 정말 웃긴게 반 카이사르파는 결국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를 포함한 제 2차 삼두정치 세력에 의해 모두 죽는다. 그들은 카이사르를 죽여놓고 원로원의 힘을 강화하지도 못하고 카이사르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역으로 죽을까봐 조용히 지냈다. 진짜… 카이사르는 무엇때문에 죽은 것일까…? 이 세계를 변화시킬 천재가 죽은 느낌이라 읽으면서도 너무 씁쓸하다. 그것도 나이가 많아서, 병이 걸려서도 아닌 살해 당해서…라니…

카이사르는 유언장을 남겼는데 옥타비아누스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주고 자신의 후계자로 삼겠다고 했다. 이에 명성이 높아진 옥타비아누스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카이사르가 자신을 능력없는 사람으로 봤다는 것에 분노했다. 안토니우스는 유언장에 의해 입지가 높아진 옥타비아누스와 손을 잡은 후 동부는 자신이 서부는 옥타비아누스. 이렇게 반반 나눠서 통치하기 시작했다. 옥타비아누스는 전쟁에는 능력이 없었지만 생전 카이사르가 옆에 붙여준 아그리파가 있었다.

아그리파는 젊었지만 아직 젊었고 경험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에스파냐쪽의 분쟁을 해결하면서 실력을 키웠다. 그리고 난 후 안토니우스와의 대결에서 결국 승리했다. 이 승리는 솔직히 실력이라기 보다는 클레오파트라에 푹 빠진 안토니우스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있으면서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고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토니우스는 모든 전쟁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시키는대로 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해전에서도 육지전에서도… 클레오파트라는 전쟁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도 없으면서 왜 안토니우스의 전쟁에 끼어들었을까? 역시 사람은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렇게 해전, 육지전에서 패한 안토니우스는 자살하고 클레오파트라 역시 자살했다. 책에서는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나는 안토니우스가 자존감이 낮아 클레오파트라라는 대상에 의존해서 현실을 도피했다고 생각한다. 카이사르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어느 순간 자기보다 훨씬 어린 옥타비아누스보다 밀리고 있다는 현실을 자각한 후… 자존감을 다시 쌓아올리기 위한 무엇인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랑. 클레오파트라였을까?

이제… 옥타비아누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과연… 카이사르가 12, 13년을 더 살고 죽었다면 어땠을까? 어떤 나라가 펼쳐졌을까? 그처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그 자체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 존재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천재적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