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1-2편 - 종말의 시작
by Seungbeom Kim
이번 편은 로마의 철인황제의 아들 콤모두스 황제 이야기이다. 아버지에 비해 형편없는 자식이라는 평을 듣는 그는… 어떤 인물일까? 그리고 그 후 내란, 그리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이어가는 로마는 어떨까?
로마인 이야기 11편 - 콤모두스 황제 그리고 내란 후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역사가 디오 카시우스는 콤모두스의 치세를 ‘제국의 재앙이었다.’라고 표현했다. 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형편없는 그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았을까? 작가가 내린 답은 명분이다.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명분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핏줄, 정통성과 같은 것이다. 만약 친아들을 후계자로 삼지 않으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단순히 황제 안되는게 어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핏줄이면서 황제가 되지 못했을 때의 그 ‘화’는 로마 제국의 큰 재앙을 가져다 줄 수 있을만큼 큰 파급력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모든 황제들은 그 명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 친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들인다거나 핏줄을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후계자라는 것을 암암리에 나타내거는 등 이런 것들이 바로 명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로마의 황제는 말이 황제이지 ‘제일인자’라는 뜻이기에 원로원의 모든 찬성이 있어야 황제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시민들의 평가도 꾸준히 받아야 했다. 즉, 명분없는 황제는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구조였다.
어느 왕을 보아도 명분, 핏줄을 중요시 한다. 정통성에 집중한다.
한국의 재벌도 이와 비슷하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업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당연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미국을 보면 실력주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이룩한 회사는 자신만의 회사가 아니다.
즉, 주주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회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주의 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세습이 아닌 실력을 택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로마인의 의식수준이 아무리 높았고 실력주위 인선을 펼쳤다 하더라도
제정시대인 만큼 그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동양이 좀 더 세습이 잦은 것 같지만...
어쨌든 어떤 특권은 자신의 핏줄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것은 본능아닐까?
이렇게 명분에 의해 자연스럽게 황제에 오른 콤모두스. 그는 게르마니아 전쟁을 종결지었다. 이기고 있었지만 먼저 강화를 요청하고는 로마로 귀환했다. 원로원을 포함한 시민들은 굴욕적인 강화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60년 동안 전쟁없는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정치가들이 건드리면 반드시 지지율이 떨어지는 정책이 있다. 이게 바로 그 정책이었지만 60년의 평화를 가져다 주었기에 옳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비슷한 것이 바로 티베리우스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수행했던 것과 같다. 이 두 황제 역시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지만 이후에 큰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콤모두스는 이 두 황제와 같은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닌 회피를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었다.
지금도 반드시 지지율이 떨어지는 정책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정책들이 한 세기가 지나고 100년, 200년 이렇게 지나면 평가가 달라진다.
이런 멀리 볼 수 있었던 몇몇의 훌륭한 황제들. 그들이 본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콤모두스는 아무생각 없이 나라를 다스리는 바보같은 인물이었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치세를 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나 루킬라의 암살 음모를 겪은 후 그는 폭군으로 변했다. 자기 친척들을 포함하여 유능한 인재를 죽였다. 하지만 피렌니스라는 인물은 그 황제를 대신해서 로마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관리한 4~5년 간 로마는 크고 작은 위기를 잘 벗어났지만 원로원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왜냐하면 피렌니스는 원로원들의 무능함을 대놓고 혐오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를 노린 콤모두스의 시중을 드는 해방노예 클레안도르스가 이간질을 했고 피렌니스는 살해당하고 해방노예가 로마를 관리하게 된다.
해방노예 클레안도르스의 목적은 축재였다. 이런 축재를 목적인 그가 한 관리는 시민, 원로원들의 불만을 키웠고 결국 살해당한다. 축적한 재산을 써보지도 못하고 권력의 맛만 보다 죽은 것이다. 그 후 그의 측근인 애인, 근위대장, 해방노예 하인 등에게 휘둘리다가 자신의 레슬링 선생에게 살해당한다.
콤모두스는 살해당한 후 ‘기록말살형’에 처해지지만 다행히 4년 후 회복된다. 딱히 ‘기록말살형’이라고 하더라도 콤모두스가 12년 간 남긴 것이 없어 딱히 말살할 기록이 없었다.
콤모두스는 운동을 좋아하던 황제였다. 실제로 검투사로 출전한 적도 많다.
그의 조각상을 보면 약간 멍청한 느낌, 초점이 없는 느낌이 든다.
눈동자가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얼굴 표정에서 느껴졌다.
사람마다 그 자질이 다르다고 한다. 아마 콤모두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자질에는 못 미친 것 같다.
같이 것을 보더라도 다른 생각을 하듯 마르쿠스가 본 것을 콤모두스는 보지 못한 것이다.
운동에만 치중한 그에게 좁은 시야는 당연한 것이었을까...?
시야는 좁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황제에 등극한 이후에도 생각을 넓히려는 노력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가 죽은 후, 뒤를 이을 황제가 중요해졌다. 근위대장 레토는 페르티낙스를 제위에 앉혔다. 이 때 그의 나이는 66세로 네르바 황제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어떻게는 로마를 콤모두스 황제가 즉위하기 전처럼 관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런 그의 노력은 자연스럽게 레토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이에 반감을 가진 레토는 페르티낙스를 살해한다.
레토는 바로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차기 황제로 만들었다. 이 당시 경쟁자가 한 명있었는데 그와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제위 경매를 했다고 한다. 그는 원래부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밑바닥부터 올라간 사람에 비해서 군단병의 인기를 얻을 수 없었다. 결국 여기저기서 황제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들은 모두 몇 개의 군단을 등에 엎고 있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라인 강 근처의 군단에게 큰 지지를 받으며 들고 일어났다. 그는 브리타니아 쪽에서 들고 일어난 클로디우스 알비누스에게 로마를 탈환한 뒤 공동황제가 되자는 제안을 하고 승낙을 받아낸 후로마로 진격한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큰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세베루스가 로마 근처에 왔을 때 살해당했다. 원로원들은 바로 세베루스는 황제로 인정하기로 했다. 세베루스는 근위병을 해체하고 자기 밑에 있던 부하들을 근위병으로 만들었다. 유일하게 로마인으로만 구성된 근위병을 해체한 후 이제 로마의 엘리트 군대는 사라지게 되었다.
세베루스는 시리아 근처에서 들고 일어난 피스겐니우스 니게르를 공략하러 나셨다. 이 때 3년이란 시간이 걸렸는데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는 갈리아 땅에서 정착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 결과 편안하게 세베루스는 전투에서 이겼고 알비누스까지 공격해 승리했다.
모든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제대로 된 1인 황제가 되었다. 그는 패배자에 대한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즉, 카이사르가 아닌 술라와 비슷한 방법을 택했다. 아무리 카이사르가 좋은 전례를 보여줬다고 하더라도 이해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역시 명분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후계자로 자칭하며 콤모두스의 ‘기록말살형’을 철회시켰다. 그리고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원로원들을 죽이거나 추방시켰다.
그는 군인황제로서 군단병들에게 출세의 길을 열어주었고, 결혼도 인정했다. 가장 큰 변화는 퇴직금이 아닌 월급 크게 올려서 주는 식으로 정책을 바꿨다는 것이다. 정말 군단병에게 큰 지지를 얻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군단이 나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봉급도 오르고 결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군단 생활이 너무 편안해져버렸다. 즉, 사회로 돌아가려고 하기보다는 군단에 남으려고 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이는 군단과 사회의 괴리감을 키우게 된다.
이 때문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비로마적인 전제군주, 로마 제국의 군사 정권화로 방향키를 돌린 통치자’라고 평가받게 된다.
지금은 전쟁도 없고 생명에 대한 의식이 높다. 그래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로마 시대에는 전쟁도 잦았고 언제 칼을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이다.
아마 특권을 가질 수록 가시방석이 아니었을까?
처음에 나는 군단병에게 큰 혜택을 준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균형을 깼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도 균형잡힌 생각을 가지지 못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항상 중심을 잘 잡자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행동으로 나오긴 쉽지 않은 것 같다.
세베루스는 두 아들과 함께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파르티아를 공격했다. 이 때 파르티아는 이미 페르시아때문에 힘든 상황이었고 로마를 위협할 힘조차 없었다. 하지만 세베루스는 개의치 않고 공격했고 그 결과 가상의 적으로 불리던 파르티아가 곧 멸망하고 진짜 적 페르시아가 등장하게 된다.
세베루스의 두 아들 카라칼라, 게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카라칼라는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는 스타일이었고 자신의 장인을 죽였다. 이런 두 아들을 두고 세베루스가 죽을 때, 둘이 힘을 합쳐 나라를 잘 다르리라는 유언을 남긴다. 아마 이 유언에는 세베루스가 곧 자신의 왕조가 망할 것을 예측한 것이 아닐까?
나는 형이 있다. 형과 사이가 정말 좋다.
사실 어릴 때는 형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형이었을 뿐.
하지만 지금은 형에게 많이 의지하고 소통한다.
내가 동생이라서 형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나의 형은 생각이 깊다.
내 행동을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게 느껴진다.
최근에 형과 동생사이가 좋지 않은 가족을 자주 보았다.
형이라면 먼저 다가가 보는 것이 어떨까? 넓은 마음으로.
그렇다고 동생은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동생도 당연히 그만큼 형의 마음에 부응해야 한다. 아니 부응하려 노력만 보이면 충분하다.
사실 로마가 망해가는 것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정말 그만 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한다. 하지만 이런 실패 속에서도 배우는 것이 있기에 차근차근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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