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은 서기 211년 ~ 284년 간의 로마 시대를 쓴 내용이다. 이 시기에 22명의 황제가 나왔다. 이 것만 봐도 위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어떤 위기였을까?

로마인 이야기 12편 - 카라칼라 황제

####카라칼라 황제(211년 ~ 217년)

카라칼라는 동생 게타와 함께 황제에 등극한 후 1년이 지나 동생을 죽였다. 그리고 난 후 그는 안토니우스 칙령을 공포했다. 안토니우스 칙령은 로마 제국 내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법이다. 이는 겉으로 보이기에는 정말 인도적인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이를 세수 증대를 위한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원래 로마시민에게 부여한 세율을 5%에서 10%로 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세수 증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세수가 줄어들게 된다.

원래 속주에서 거둬들이는 세수 10%는 이제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로마시민에게 부여되는 세를 10%로 증가시켰으니 충분한 것 아닌가? 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 로마시민에게 부여된 세금은 매년내는 세가 아닌 상속세나 노예해방세였다. 즉… 매년 거둬들이는 일정한 세금이 사라진 것이다. 로마도 개인주의화가 되고 있어 이제는 상속도 무조건 자신의 육친에게만 하는 비율이 늘어났으며 로마의 절대 노예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즉… 세수는 줄어들게 되었다.

또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기득권취득권이다. 속주민들은 로마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즉, 취득권이었다. 계층이 존재했고 이 계층의 이동이 가능했기에 누구나 노력하고 의욕만 있으면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의욕과 노력은 새로운 인재 창출에도 효과적이었고 그래서 수많은 속주민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하지만 이 취득권기득권이 되어버렸다.

로마시민들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원래부터 로마시민이었던 사람들, 그리고 노력을 통해 취한 시민권을 얻은 속주민들은 로마 시민권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누구나 노력없이 로마 시민이 되어버렸다. 즉, 이제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긍지가 사라져버리게 되었으며 더 높이 올라가려는 의욕 역시 사라졌다. 즉, 새로운 인재 배출의 길도 막힌 것이다. 또한, 기존에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갑자기 로마시민이 된 사람들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기존 로마시민과 갑자기 로마시민이 된 사람들은 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은 모두가 평등한 것을 참지 못하고 어떻게든 차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 즉, 현대사회로 비유하면 브랜드가 죽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겠다. 라는 생각에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결과는 단점만 남았다는 것에도 놀랐다.
내 생각이 짧다는 것도 알았다. 인간세계에서 평등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믿고 싶지 않지만 이게 사실이다. 현재 평등한 것 같지만 사실 표면적인 평등뿐이다.
파고들면 어디서든 차별이 존재한다.
평등을 참지 못하고 차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인가?

로마의 군은 군단병과 보조병(속주민)의 형태로 유지되었는데 였는데 모두가 로마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이 경계가 사라졌다. 즉, 군단병과 보조병의 급료차이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연히 점차 사라졌겠지만 이를 충당해야 하는 압박도 있으면서 동시에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통화가치 하락에도 신경써야 했다.

카라칼라는 군사적인 부분에서는 꽤 능력이 뛰어났다. 게르마니아 방벽을 강화하는 부분이나 도나우 방위선 강화 작업도 제대로 수행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기동부대안토니우스 칙령과 마찬가지로 좋다고 생각하고 만들었지만 단점이 커진 케이스였다. 기동부대는 기본적으로 젊은 사람으로만 구성되었다. 즉, 원래 있던 군단에서 젊은 사람만 차출하여 구성시킨 부대이다. 그 결과 남아있는 군단들은 노령화가 되었고 이는 야만족의 침입을 격화시킨 요인이 되었다.

파르티아 전쟁을 치루던 중 군율에 어긋난 병사들을 혼내준 일로 불만을 품은 병사들에게 살해당했다. 이 병사들의 상관인 마크리누스가 황제에 등극하게 된다.

이 후 마크리누수(217년 ~ 218년) - 엘라가발루스(218년 ~ 222년) 이렇게 황제에 등극하지만 딱히 둘 다 금방 살해되었다. 단지 엘라가발루스는 시리아 속주에서 나온 황제였다는 점이다. 이 후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 역시 엘라가발루스 황제의 사촌이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정말... 허무하다.
위기로 인해 등극한 황제들은 대부분 준비없이 갑작스럽게 제위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쉽게 살해된다. 얼마나 황제의 권위가 떨어진 것일까?
아무리 황제도 시민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쉽게 살해당하는 것을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동양 역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일까?
아직도 잘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