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5-1편 - 로마세계의 종언
by Seungbeom Kim
테오토시우스가 죽은 후 동서는 완벽하게 구분되고 테오토시우스의 두 아들의 후견인은 스틸리코라는 반달족 출신의 장군이었다.
로마인 이야기 15편 - 최후의 로마인(서기 395년 ~ 410년)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가 각각 13년, 28년 동안 제위에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선제의 아들이라는 이유였다는 말이 나올 만큼 무능력 그 자체였다.
스틸리코는 반달족 아버지와 로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23살 무렵 테오도시우스에게 인정받았다. 그는 23살 때 페르시아와의 불가침협정에 사절단으로 파견되었는데 그 교섭에서 스틸리코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한다. 그래서 유연함과 의연함은 스틸리코를 언급할 때 수식어처럼 따라다녔다.
스틸리코는 황제 호위대장이 되고 테오도시우스의 양녀 세레나와 결혼하여 황제의 가족이 되었다. 당연히 스틸리코의 빠른 진급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지만 세레나는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읜 호노리우스의 어머니같은 역할을 했기에 방패 역할이 되어 주었다. 스틸리코는 호노리우스가 있는 밀라노에 있었고 아르카디우스가 머물던 콘스탄티노폴리스에는 루피누스라는 환관이 권력을 잡았다.
로마 제국 말기에 일어난 민족 대이동
으로 인해 서고트족이 가족과 다함께 도나우강으로 쳐들어 왔다. 이 서고트족을 이끄는 사람은 일라리크였다. 당시 라인강에 있었던 스틸리코는 군대를 반으로 나누어 일라리크를 막으러 갔고 전투에서 승리했다. 두번째 전투에서 끝을 내려고 생각한 스틸리코는 황제의 명령서를 받고는 울분을 토해냈다. 루피누스가 권력을 쥐고 황제를 흔들어 출격 중지를 시켰기 때문이었다. 결국 동로마쪽으로 가이나스라는 장군과 군사를 보냈고 자신은 서로마로 돌아갔다.
이렇게 돌아간 가이나스가 이끄는 장병들을 위한 열병식이 진행되었을 때 갑자기 루피누스가 살해당하게 되고 이 뒤를 이은 사람이 또다른 환관 에우트로피우스였다.
항상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인간 사회는 예측할 수 없어 재미있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답답하기도 하다.
순간의 이익,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서 앞으로 희생될 사람과 가치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
너무 공공심을 잃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자신의 본분을 잊고 그 이상을 탐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 같다.
로마는 이렇게 일라리크가 힘을 키울 시간을 다시 주게 된다. 이듬해인 서기 396년 다시 서고트족은 움직이게 되고 1년 내내 그리스 전역을 약탈하게 된다. 그 후 스틸리코는 황제의 요청인지는 모르나 군대를 움직이게 된다. 스틸리코는 이탈리아에서 데려온 병력만으로 일라리크를 또 이겼다. 하지만 궤멸시킬 정도의 병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완전히 서고트족을 물리치지는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스틸리코는 같은 야만족이라서 일라리크를 놓아주었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일라리크는 다시 재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재기한 일라리크가 다시 그리스의 북서부 일대를 약탈하자 동로마 제국에서는 아예 일라리크를 일라리쿰이라는 지역을 지키는 사령관으로 임명하게 된다. 이렇게 동로마와 서로마의 경계가 뚜렷해지게 된다. 이렇게 야만족 침입을 수습했다고 생각할 때 북아프리카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길도라는 무어인이 동로마제국을 따른다는 명목하에 반란을 일으켰고 여기에 도나투스파라는 기독교도를 끌어들였다. 도나투스파는 이단으로 몰려 삼위일체를 지지하던 기독교도에게 오랫동안 배척과 탄압을 받아왔었다. 즉, 로마화가 많이 진행된 카르타고계 주민을 제외한 북아프리카 대부분은 도나투스파였다.
스틸리코는 길도를 공공의 적으로 선언해달라고 원로원과 황제에게 요청하게 된다. 하지만 원로원들은 당시 이 결정을 꺼려했다. 이 원로원들은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었고 이들 농노를 공출하지 않는 대신 많은 세금을 내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틸리코는 끈질기게 설득했고 거국적 군사행동이라는 모양새를 만드는데 성공하게 된다. 당시 원로원은 아무런 힘이 없어진지 오래였지만 이를 통해 스틸리코는 대의명분을 만드는데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란을 진압하는 장군으로는 길도의 친동생 마스케젤을 임명했고 이는 성공을 거두었다. 반란을 진압한 후 몰수한 길도의 재산은 공공 건축물을 보수하는데 쓰였다. 이렇게 스틸리코는 승승장구하지만 항상 야만족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이렇게 야만족의 침략이 거듭되고 농지가 황폐화 되면서 농민은 농노가 되었고 비생산자가 증가하게 되었다. 군인과 관료가 비생산자였지만 이제는 기독교 성직자가 여기에 포함되게 되었다. 기독교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 수록 일을 해야할 인구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서로마보다 동로마가 안전하다고 생각한 부유층은 동로마로 이주했고 서로마는 점점 국가 재정이 파탄나기 시작했다. 대규모 농장주들은 대부분 원로원이였고 그들은 농노를 병사로 징집할 수 있었다. 즉, 자신들의 농장만을 방어하는 군대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공심 역시 쇠퇴하게 된다.
이런 서로마제국의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동로마제국에서의 야만족 배처군동이었다. 당시 가이나스는 야만족 출신의 아리우스파였고 이에 휘말려 죽게 된다. 이와 동시에 서방에서의 야만족과 아리우스파를 몰아내자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스틸리코 역시 야만족 출신이라는 점에서 서로마와 동로마는 냉전상태가 되었다.
이런 틈을 놓치지 않고 야만족이 다시 도나우강을 넘어 쳐들어왔다. 훈족의 침공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쳐들어 온 부족이 대부분이었다. 이 훈족은 야만족도 야만족이라고 부를 만큼 무서운 상대였다. 일라리크 역시 다시 이탈리아를 침공하게 된다. 스틸리코는 도나우강으로 침범한 부족과 강화를 체결하고 일라리크를 막으러 갔다.
일라리크는 스틸리코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고 패주하여 다시 발칸지방으로 되돌아 갔다. 이후 스틸리코는 트리어에서 아를로 갈리아 지역을 총괄하는 로마 세력의 본거지를 옮기게 된다. 이렇게 갈리아 중부와 북부(장발의 갈리아)를 버리게 되었다. 로마는 더이상 갈리아 지역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갈리아는 에전부터 로마화가 진행되었고 원로원들도 많이 배출된 지역이다. 즉, 원로원들의 반감을 크게 사게 된다.
이후에도 야만족들은 끊임없이 침입했으며 특히 라다가이소라는 인물이 이끄는 40만 명의 야만족들이 침입했다. 이 40만명은 북이탈리아를 약탈하고 중부 이탈리아로 이동했다. 이 때 40만 명의 야만족은 피렌체를 공격했고 여기서 이 야만족이 몰살당한 피에솔레 전투가 일어난다. 여기서 활약한 것도 당연히 스틸리코였다.
장발의 갈리아는 여러 야만족들의 침입이 일상이 되었고 여기에 브리타니아에서 자신을 콘스탄티누스 3세라고 외치며 반란까지 일어나게 된다. 이 반란군은 갈리아로 진격했고 당시 갈리아에 살던 로마인들은 이들을 해방군인 마냥 환영했다.
스틸리코는 원로원에게 콘스탄티누스 3세를 국가의 적으로 선언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더이상 갈리아로 파견할 병사들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 정도로 로마 제국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스틸리코는 일라리크와 협정을 맺고 그를 서로마 군사령관으로 임명하게 한다. 이 때 엄청난 반발을 사고 아내도 이번 만큼은 스틸리코를 도와주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이 역시 결국 허가되었고 일라리크를 통해 야만족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
꾸준히 반감을 쌓게될 수 밖에 없었던 스틸리코는 황제와의 사이도 냉랭해 지면서 완전히 고립되었다. 호노리우스는 올림피우스라는 자신의 측근인 환관의 이간질에 빠지게 되어 스틸리코를 반역자로 생각하게 된다. 올림피우스는 몰래 스틸리코파인 병사와 장교들을 모조리 죽인다. 여기서 스틸리코는 고뇌하게 된다. 남은 병력으로 황제군과 싸울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를…
스틸리코는 야만족의 피가 흐르지만 로마인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로마인으로 남기로 결심하고 황제를 알현하러 혼자 갔다. 이렇게 그는 로마인으로 참수당했다.
이후 남아있는 병력은 모두 일라리크에게로 갔고 이 기회를 놓지지 않고 로마로 출격했고 여러번의 공갈을 통해 재물을 뜯어냈으며 로마를 침략하여 약탈까지 했다. 이렇게 로마라는 도시는 점점 의미를 잃어갔다.
인간은 차별없이는 살 수 없다라는 말이 다시 기억이 난다.
나도 삐뚤어진 시각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자신에게 수십년간 충성한 장군을 이렇게 쉽게 죽일 수 있다니...
황제가 너무 멍청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생각이 없으면 그 신뢰가 말 한마디에 무너질 수 있을까?
정말 이제 로마에는 인물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 돈 많은 원로원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일까...?
로마가 약탈당하면서도 어떻게 꾸준히 그렇게 나만 안전하면 괜찮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국가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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